필운동 골목 돌아다니다가 찾게 된 가게 '칼질의 재발견'...


예약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사직단을 한바퀴 돌았다. 종로 도서관 아래쪽 운동장 벤치에서는 연인들이 손 잡고 꽁냥꽁냥하고 있었다. 운동장 한 켠에는 신사임당 동상과 율곡 이이 동상이 있는데, 왜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직단에 있는지는 모르겠다. 거기서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수령이 족히 4~50년은 되어 보이는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 두 그루가 있다. 잠깐 벤치에 앉아 플라타너스 향을 들이마셨다. 나는 플라타너스 향기를 맡을 때마다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향기에 취하다보면 이성의 끈이 끊기는 느낌이랄까... 이상하게 성적으로 흥분이 된다. 


'아차... 늦었구나...'


이상야릇한 향기에 취해 있다보니 어느새 예약시간에 가까워져 버렸다.



황급히 가게로 갔다. 다행히 딱 맞춰서 도착했다. 손님이 아무도 없어서 앉고 싶은 자리에 앉았다. 호주산 소 살치살 180g (24,000원)에 에피타이저와 디저트(+10,000원)를 더해서 주문했다. 



직접 구운 빵. 이라고 적혀 있었다. 갈라 보니 아주 조금 밀가루 냄새가 났고 반죽이 아주 조금 덜 익은 것 같았다.  나중에 추가로 받은 빵은 괜찮았다.



에피타이저로 나온 저온조리한 농어요리. 


칼질을 했는데 중간에 걸려서 놀랐다. 뼈인가 하고 살짝 들춰 봤더니 반투명하게 덜 익은 상태였다. 홀에 계신 분을 불러 '덜 익은 것 같아요..' 하니까 저온조리해서 원래 그렇단다. 조금 황당했다. 수비드가 무엇인가... 진공팩에 넣어 통제된 온도에서 익히고자하는 식재료의 모든 부분에 균형있게 열을 가해 과잉익힘Over Doneness을 막고, 새로운 텍스쳐를 주기 위함 아닌가...? 수비드 팩에서 꺼내서 껍질 쪽 시어링Searing 할 때 덜 익은게 보였을 것 같은데, 이건 핑계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로메인 상추 샐러드. 




호주산 소 살치살(Chuck Flap Tail).


그레이비 소스와 감자 퓨레를 곁들여 주었다. 가니쉬가 적어서 좋았다. '소고기스러움'이 극대화됐다. 쓸데없는 가니쉬는 고기를 즐기는데 방해만 될 뿐...



단면이 핑크색으로 이쁘게 잘 나왔다. 시어링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괜찮았다. 시어링 할 때 소금간을 잘 해서 소스는 없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 근육조직 속에 박혀 있는 마블링이 수비드하면서 적당히 녹아 고기 맛을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다. 굳이 흠을 잡자면 작은 조각에 소금이 불균일하게 뿌려져 있어서 일부분은 조금 짜던 점...?


여담으로 고깃집에서 구워먹는 1++짜리 살치살들은 기름기가 너무 많다. 이런 건 과도한 마블링으로 인해 저온 조리시에는 지방이 렌더링되지 않아서 먹으면 고기인지 기름덩어리인지 구분이 안 될 지경이다. 1++ 등급 고기는 그냥 고온 조리해서 적절히 지방을 렌더링시켜주는게 훨씬 낫다. 마블링이 적은 1, 2 등급(한국 등급 기준)고기를 수비드했을 때 제일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디저트. 

머랭 쿠키(?)를 곁들인 화이트 초콜릿 아이스크림, 와사비 마카롱, 레몬 타르트.


레몬 타르트는 파이지가 완전 눅눅해서 흐물흐물거렸다. 와사비 마카롱은 참신했지만, 좀 질기지 않았나 싶다. 가운데 넣은 필링은 존재감이 없었다. 화이트 초콜릿 아이스크림은 맛있었다.



에피타이저와 디저트는 별로였지만 메인요리가 살렸다. 메인요리 주문시 샐러드와 커피 또는 차가 같이 제공되니 메인만 주문해서 먹어봄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