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청담동 레스쁘아 L'Espoir에 갔다. 당일 예약이 불가능할 거라 생각하고 거의 포기하고 전화를 걸었는데 다행히도 테라스 쪽에 자리가 있었다. 도착해서 간판을 보니 브라세리Brasserie와 비스트로BIstro를 가게 이름 양쪽에 적어 놨다. 진짜 비스트로나 브라세리 혹은 부숑Bouchon처럼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동네 식당이 컨셉인가 했다. 

  예약한 자리에 안내받고 메뉴판을 들춰 보았다. 여러 가지 단품 메뉴와 적당한 가지 수의 코스 메뉴들이 있었다. 수프부터 디저트까지 총 5 개로 이루어진 코스를 주문했다. 양이 적을 것 같아서 앙트레Entrée로 오리요리를 절반 사이즈로 한 개 추가했다. 가격은 코스 100,000원에 추가한 앙트레 20,000원, 도합 120,000원이었다.



  Soupe à l'oignon Gratiné

  바게트, 그뤼에르, 에멘탈 치즈로 그라탕한 셰리와인과 브랜디 향의 양파 스프


  프랑스식 양파 스프는 양파를 오랫동안 조리(최소 40분 이상)해서 단 맛을 나게 만들고 거기에 소고기육수Beef Broth 나 닭육수Chicken Broth, 그뤼에르 치즈, 꼬냑 등을 넣어 만든다. 기본적으로 정성이 안 들어가면 만들 수 없는 음식이다. 막 오븐에서 꺼냈는지  뜨끈뜨끈하게 나왔다. 단 맛과 짭짤한 맛의 대비가 상당하다. 생생하게 표정이 살아 있었다. 다만 바게트는 넣은지 오래되었는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곤죽이 되어 있었다. 그것빼곤 정말 맛있었다. 


  추가1.  양파의 매운 맛을 내는 성분인 휘발성의 황 화합물(R-SH, 즉 티올Thiol 기가 붙은 유기 화합물)인 알릴 설파이드Allyl Sulfide, 다이알릴 다이설파이드Diallyl disulfide 등을 오랫동안 가열하게 되면 일부는 기화하고 일부는 환원 반응에 의해 단 맛을 내는 메탄티올Methanethiol(또는 메틸멜캡탄Methyl Mercaptan) 이나 프로판티올Propanethiol(또는 프로필멜캅탄Propyl Mercaptan) 등으로 변환된다. 거기에 원래 양파가 가지고 있는 과당, 포도당,설탕 등이 캐러맬화Caramelization하면서 풍성한 갈색을 띈 복합적인 풍미를 가진 화합물로 바뀌게 된다.



  Salade de Betterave Rouge au Miel d'Orange

  오렌지로 향을 낸 하우스메이드 꿀과 셰리향의 비트 고르곤졸라 치즈, 사과 호두를 곁들인 샐러드


  오렌지, 비트, 셰리 와인으로 만든 꿀리Coulis 소스(아마도..?)를 드레싱으로 끼얹은 듯 하다. 달달하기도하고 시큼하기도 한 소스가 좋다. 물기를 잘 턴 야채도 신선했다. '이제 음식 들어가오'라고 신호를 보내는, 샐러드로써의 역할을 충분히 했다.



  Lucullus de Valenciennes

  겹겹이 쌓은 염장한 우설과 푸아그라, 블랙 트러플.


  우설을 얇게 저며 사이사이에 거위 지방간, 얇게 저민 검은 송로버섯을 넣어 숙성시켰다. 머스터드 드레싱, 피클, ?? 빵을 곁들여 주었다. 이름이 특이하다. 발랑시엔의 루꿀루스...? 발랑시엔에서 유명한 음식인가...? 탄력있는 우설은 마치 염장 훈연한 햄처럼 발그스레했다. 염장했다는데 짜지는 않았다. 거위 지방간은 별 맛없었지만 사이에 섞인 은은하게 퍼지는 송로버섯 향이 좋다. 무슨 빵인지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 빵은 바삭함과 쫄깃함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면서 독특한 식감을 준다. 우설 올리고 피클 올려서 먹으면 좋다. 



  Tartine de Poitrine de Canard

  로스트한 오리 가슴살과 포트와인으로 글레이즈한 건살구.

  표고버섯과 아몬드 처트니를 곁들인 타르틴.

  

  추가로 주문했던 앙트레였다.  겉껍질과 살코기 사이의 지방은 다 날려 버리고 껍질을 바삭바삭하게 잘 만들었다. 참고로 오리고기나 닭고기는 껍질과 살코기 사이에 지방층이 두텁게 모여 있다. 콩피에 쓰이는 오리기름을 만들 때 껍질만 벗겨서 물에 넣고 - 웻 렌더링Wet Rendering - 끓여 기름을 뽑기도 한다. 

  다만 염지Brine을 한 듯한 오리 가슴살은 염지액의 농도가 짙었는지 짰다. 또 오래 조리했는지 조금 질겼다. 껍질부분을 지지고 나서 베이컨이나 유지등으로 감싸서 조리했으면 나았을 것 같다. 혹은 베이스팅Basting(고기를 구울 때 육즙, 버터 등의 소스로 고기를 적시는 것)을 했으면 훨씬 나은 Poitrine de Canard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글레이즈한 살구는 은근히 풍기는 달콤한 향기와 식감이 좋았다. 같이 글레이즈한 표고버섯에서 느낄 수 있는 건 식감뿐이었다. 



  Plat de Côte Braisé

  트러플 퓨레와 버섯, 푸아그라를 넣어 브레이즈한 갈비살, 푸아그라쥬와 당근 리조또.


  어떻게 썰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갈비살을 도넛 모양으로 만들고 그 안 쪽에 송로버섯 다진 것과 거위 지방간를 넣어 조림Braise했다. 서서히 익혀서 육즙이 풍부해 촉촉했고, 나이프를 대면 쓱 잘릴만큼 부드러웠다 거위 지방간은 부드럽고 농후하며 향긋함이 잘 조화를 이룬다. 훌륭했다. 다만 리조또에도 , 브레이징한 갈비살에도 푸아그라. 온통 푸아그라의 향연이라 전체적으로 요리 자체기 조금 무거워지지 않았나 싶다. 이건 메뉴 선택을 잘못한 내 잘못도 크지만, 프렌치라고 무조건 거위 지방간이랑 송로버섯을 무조건 써야하나 싶다. 테린이나 파테은 푸아그라 쓰는 건 맞는데....

   



  디저트로 주문한 레몬커드 디저트와 홍차. 


  홍차는 꽁뜨와 리샤르Comptoirs Richard의 Thé Noir 다즐링. 다즐링치고 너무 마일드해서 조금 의아. 얼그레이나 레이디그레이를 주문할 걸 그랬다.



  Crème au Citron

  레몬 커드를 밑에 깔고 (아마도) 시럽에 절인 바바Baba를 올리고 그 위에 마시멜로우와 피스타치오 조각들을 올렸다. 바바가 조금 덜 적셔졌는지 윗 부분은 빵 같았다. 그 외에는 식사를 마무리하는 디저트로서의 역할을 다 했다. 상큼하고 달달했다. 맛있었다.



  레스토랑과 비스트로의 경계 사이에서 미묘하게 자리잡고 있는 레스쁘아.  폴 보퀴즈Paul Bocuse의 누벨퀴진Nouvelle Cuisine이라기보다, 오귀스트 에스코피에Georges Auguste Escoffier의 퀴진 클라시끄Cuisine Classique에 가까운 음식을 내놓는 식당이다. 음식은 맛있었다. 근데 손님들이 많아서 그런지 빈 물잔을 한참을 기다려도 채워주지 않아 서빙하시는 분에게 요청해서야 받은 게 아쉽다면 아쉽겠다. 다음에 한 번 더 가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