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레이피어이고 사실상 사이드소드 매뉴얼인 요아힘 마이어의 레이피어 검투를 번역하고 나서 이탈리아 매뉴얼도 관심이 가 아킬레 마로쪼의 오페라 노바, 만치올리노의 오페라 노바, 디 그라씨의 검술서를 쭉 읽어 보았다. 그러고 나서 든 생각은 이탈리아 놈들 책은 노답이라는 것이다. 핵심 원리는 쏙 빼놓고 곧장 케이스 스터디로 들어간다. 이는 이탈리아 레이피어 매뉴얼인 카포 페로, 지간티의 매뉴얼도 마찬가지이다. 곧장 케이스 스터디로 들어간다. 이것은 해당 검술에 일정 경지 이상 올라 있는 상태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지, 처음 접하고 수련을 시작하는 초보자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홍진씨와 이야기를 하면서 나왔던 것처럼 사실상 무예도보통지라고 볼 수 밖에 없다.

  내가 요아힘 마이어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크게 보면 두 가지이다. 첫 번째로 그는 검술서를 집필함에 있어서 각 권의 첫 챕터에 자신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서술할 것이고 또 어떤 내용을 설명할 것인지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서 그것을 읽어나가는 독자가 앞으로 무슨 내용을 배우겠구나 하는 걸 알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현대의 학술적인 글쓰기에서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나는 요아힘 마이어는 대학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최소 학술적인 글쓰기를 배웠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높이 평가하는 점은, 외지에서 들어온 검술인 사이드소드 검술을 곧이 곧대로 복붙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베이스인 리히테나워류에 입각하여 가드, 찌르기, 베기 등을 하나하나 정의하고, 각각을 어떻게 행해야 하고 어떤 방식으로 써 먹어야 하는 지를 명확하게 제시한다. 화룡점정으로 각 가드, 찌르기, 베기을 조합해서 싸움을 이끌어 나가는 방식까지 서술하고 있다. 알파부터 오메가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최소 그에 상응하는 정교함을 보여주고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서술방식과 내용 상의 정교함은 이탈리아의 레이피어, 사이드소드 매뉴얼, 심지어 피오레의 롱소드 메뉴얼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지라르 티보 당베르의 스페인 데스트레자 검술서인 ‘검의 학교’도 마찬가지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투로 설명뿐이다. 이러한 서술방식은 초보자들한테 별 의미가 없다. 이탈리아 검술 복원 종자들이 자세만 잡을 줄 알았지 죽 쑤는 이유가 바로 이런 곳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본다. 핵심이 되는 원리가 없고 케이스스터디만 하는데 늘 턱이 있을리가 없다. 초보자들은 차라리 클래식 펜싱이나 스몰 소드, 하다못해 현대 스포츠 펜싱이라도 배워 기초를 쌓고 나서 르네상스 원리를 접목시켜 레이피어 검술을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결론은 요아힘 마이어는 최소 배우신 분이라는 것이고, 이탈리아 스페인 놈들은 노답이라는 것이며, 희망은 독일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전에 무인도에 들고 갈 검술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나는 뒤도 안 보고 요아힘 마이어를 들고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