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탤지어라는 단어와 개념은 모두 17세기 의학자 요하네스 호퍼가 장기 원정에 시달리는 스위스 용병의 상태를 기술하려고 창안했다. 노스탤지어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시름, 즉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실제로 심신이 허약해지는 병을 가리켰다. 증상으로는 우울증, 식욕부진, 심한 경우 자살 등이 있었다. 19세기 후반까지도 군의관에게 이 병(돌이켜보면 분명한 심리 질환)은 걱정거리였다. 사기 유지는 승전에 꼭 필요한 요소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노스탤지어는 본디 시간이 아니라 공간을 통해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가리켰다. 그건 이동에 따른 고통이었다. 하지만 지리적 의미는 점차 사라졌고, 대신 시간이 노스탤지어를 규정하게 됐다. 이제 노스탤지어는 떠나온 모국을 절박하게 그리는 마음이 아니라, 사람의 일생에서 잃어버린, 평온했던 시절을 애타게 동경하는 마음이 됐다. 의학적 성격이 사라지면서, 노스탤지어는 개인 감정이 아니라 행복하고 단순하고 순진했던 시절을 향한 집단적 염원이 됐다. 본디 노스탤지어는 치료할 수 있다는 점에서 - 다음 군함이나 상선에 올라 가족과 친지로 둘러싸인 따스한 집으로, 친숙한 곳으로 돌아가면 되므로 - 설명 가능한 감정이었다. 현대적 의미에서 노스탤지어는 불가능한 감정, 적어도 치유는 불가능한 감정이다. 치료법이라곤 시간 여행밖에 없다." [각주:1]

Photography by Danil Polevoy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노스탤지어는 질병이 아니라 일반적 감정으로 여겨지게 됐다. 그 감정은 개인(과거를 병적으로 들먹이는 사람)에게 적용할 수도 있고, 사회 전반에 적용할 수도 있다. 흔히 후자는 견고한 신분제도 덕분에 '누구나 분수를 알고' 안정됐던 사회질서를 그리워하는 반동적 태도로 나타났다. 그러나 노스탤지어가 보수주의만 자극한 건 아니다. 역사상 여러 급진 운동이 혁명보다는 부활을 추구했다. 그들은 역사적 상처나 지배계급의 술책으로 훼손된 사회적 평형과 정의를 되찾아 황금기로 돌아가려 했다.  ··· 중략 ···
  반동적 노스탤지어와 급진적 노스탤지어는 현재에 대한 불만, 즉 산업혁명·도시화·자본주의가 창조한 세상에 대한 불만을 공유한다. 새 시대가 도래하자 시간은 점차 일출·일몰·계절 같은 자연 순환 주기가 아니라 공장과 사무실 시간표, 그리고 어린이를 그런 일터에 대비시키는 학교 시간표에 따라 조직됐다. 노스탤지어를 구성하는 요소에는 실제로 시간 이전의 시간, 즉 유년기라는 영원한 현재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다." [각주:2]

"역사성은, 말하자면 '시대 아우라'와 같다. 역사성은 여러 면에서 맹신을 수반한다. 그건 박물관 관객과 수집가의 믿음과 투영에 의존하는 무형적 가치다. 저서 『빈티지 록 티셔츠』에서, 요한 쿠옐베리는 순회공연 티셔츠 진품과 모조품의 가격 차이가 엄청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시대 양식은 물론 낡고 닳은 옷감마저 조작해낼 수 있으므로, 실제로 진품과 모조품을 구별하기는 어렵다. 역사성은 정작 '역사'에서 버려진 물건, 즉 찌꺼기만 띠는 성질이라는 점에서 모순적이다." [각주:3]

"자크 데리다의 저서 제목 '아카이브 열병'은 오늘날 광적으로 벌어지는 기록열을 잘 포착한다. 그 열병은 관련 기관이나 전문 사학자를 넘어 웹에서 일어난 아마추어 아카이브 창작 열풍으로까지 확대된 상태다. 이 모든 활동에는 광분에 가까운 느낌이 있다. 마치 어떤 총체적 셧다운이 일어나 만인의 뇌가 동시에 타버리기 전에 정보, 이미지, 수집물 등 만물을 '올려'놓으려고 미친 듯 돌진하는 모양새다. 버려도 좋을 만큼 사소하고 하찮은 거라곤 없는 모양이다. 모든 대중문화 스크랩, 모든 경향과 유행, 모든 한때 연예인과 TV 프로그램이 주석 달린 저작물이 된다. 그 결과, 특히 인터넷에서 아카이브는 아나카이브(Anarchive)가 돼버린다. 내비게이션이 어려울 정도로 무질서한 데이터 잔해와 기억의 쓰레기 더미로 타락하고 만다. 아카이브가 온전하려면 여과와 배제를 통해 잃어버리는 기억이 있어야 한다. 역사에는 쓰레기통이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역사' 자체가 쓰레기통이 되어 거대한 폐품 더미를 쌓아갈 것이다." [각주:4]

" "인티넷 웜홀"에 빨려 들어간다는 말 - 니코 뮬리가 웹을 헤매는 상황을 재치 있게 묘사한 말 - 에도 시간 여행 개념이 있다. 물리학자들이 끝없이 상상한 개념이자 SF에서 즐겨 쓰이는 장치인 웜홀 통로는 시공간 연속체의 주름을 관통하는 지름길을 만들어준다고 알려졌다. 이론적으로 그 터널은 시간 여행통로로 쓰일 수 있다. 뮬리가 거론한 웜홀 비유는 웹에 유사 천체 물리학적 차원을 더해준다. 웹은 사이버스페이스, 정보와 기억의 우주다. 바로 이것, 즉 시간의 공간화가 바로 아카이브가 작동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 중략 ···
유튜브와 인터넷 전반 덕분에 가능해진 시간 여행에서 결정적인 점은, 사람들이 전혀 뒤로 가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그들은 시공간 아카이브 평면에서 수평적으로, 옆으로 움직인다. 짧은 반바지 차림 라트비아 소녀들이 소비에트 풍 톰 존스 음악에 맞춰 춤추는 1971년도 예능물 유튜브 영상과, 시카고 흑인 소년이 고속 '주크' 전자 리듬에 맞춰 기묘한 발놀림을 보이는 지금 이 순간의 유튜브 동영상은 참다운 뜻에서 같은 공간에 존재한다. 인터넷은 먼 과거와 이국적 현재를 나란히 놓는다. 접하기 똑같이 쉬운 그들은 결국 똑같은 물건이 된다. 멀지만 가까운··· 낡은 지금이 된다."[각주:5]


"현시점에서 정말로 문제가 되는 것은 더 이상 미래주의의 폐해가 아니라 그 역상에 가까운, 일종의 '과거주의'다. 한때 미래가 모든 것들의 최종 목적지이자 모든 좋은 것들의 거처로서 현재를 빨아들이고 산산조각 냈다면, 이제는 과거가 그 진공청소기 역학을 대신한다. 한편으로 모든 좋은 것들이 과거에 있는데, 그것은 유의미한 기억의 형태로 현재에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세피아톤으로 아름답게 보정된 추억으로 현재를 질식시킨다. 다른 한편으로 모든 것이 과거가 되는데, 그것은 공회전하는 시간 속에서 운이 좋으면 작은 추억을 남기고 순식간에 갈려나간다. 기억과 기록은 끊임없이 오작동하고 그렇기 때문에 과잉 작동한다." [각주:6]


  1. 『레트로 마니아』,사이먼 레이놀즈 지음, 최성민 옮김, 작업실유령, 2014. p.27. [본문으로]
  2. 같은 책, pp.28-29. [본문으로]
  3. 같은 책, pp.49-50. [본문으로]
  4. 같은 책, p.57. [본문으로]
  5. 같은 책, pp.104-105 [본문으로]
  6. 『1002번 째 밤 : 2010년대 서울의 미술들』,윤원화 지음, 워크룸프레스, 2016, p.83. [본문으로]